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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D-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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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19 04:01
싸움에 휘말린 고3 학생... "세상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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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앞둔 3학년 용운(가명)이는 공부는 젬병이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의협심이 강하다. 교과수업 시간 내내 졸다가도 체육시간이나 동아리활동 시간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만나기만 하면 수험생이니 제발 공부 좀 하라'고 한사코 다그치지만 결코 밉지 않은, 그런 아이다.
그런 그가 학교 밖에서 '사고'를 쳤다. 늦은 밤, 방과 후 독서실에서 인근의 다른 학교에 다니는 1년 후배를 폭행했단다. 용운이가 욱하는 성격이 없진 않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행패를 부릴 만한 아이는 아니라 여겼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용운이를 따로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내용인즉슨 이랬다.
후배가 독서실 바깥 복도에서 누군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독서실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시끄러워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다른 곳에 가서 통화하라'며 제지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때 후배가 그 말에 순순히 따랐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터. 하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더 크게 통화를 하더란다.
아르바이트생은 재차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다소 거친 말이 오갔다고 한다. 바로 그때 용운이가 그곳을 지나갔는데, 후배의 행동이 지나치다 싶어 거친 말을 삼가라고 타일렀다. 그러는 가운데 공부하던 학생들 몇몇이 무슨 일인가 하고 모여들었다. 용운이는 내심 그 아르바이트생 누나를 좋아하고 있던 터라 그냥 눈감은 채 지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왜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느냐"는 후배의 말에 발끈한 용운이는 "대체 몇 학년인데 대학생 누나와 나한테 반말을 지껄이느냐"고 호통을 쳤다. 언성이 높아지며 험악한 분위기로 흘러가는데도, 어차피 같은 학교 다니는 선후배 사이도 아닌데 신경쓸 것 없다고 여겼는지 후배의 표정과 행동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옥신각신하던 차에 "때릴 테면 때려봐, 집에 돈 많으면 어서 때려봐"라는 후배의 말에 용운이는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밀치며 뺨을 세차게 내리쳤고, 후배는 복도 바닥에 쓰러졌다. 몸싸움 과정에서 후배가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 액정은 깨졌고, 그 후배는 곧장 부모를 불렀다. 겁은 났을지언정 그래도 용운이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치위가 열리면 반드시 남는 것은 '기록'
아이들끼리의 다툼은 부모 간 싸움으로 변했다. 병원 진단 결과 별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용운이의 부모는 파손된 스마트폰에 대해 변상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후배의 부모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용운이의 부모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 남의 일에 끼어들어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지만, 거칠게 말해서 '후배가 맞을 짓을 한 것 아니냐'는 투였다.
사건이 발생했고 학교가 이 사건을 인지한 이상 학교 입장에서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를 서둘러 열어야 한다. 전치 2주 이상의 상해 사고도 아니고, 의도적이거나 보복의 성격도 아니며 격리 조치가 시급한 사안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피해자가 자치위를 열어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자치위가 열리면, 어떤 처분이 내려지든 결정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야 한다. 이를테면, '몇 년 몇 월 몇 일, 학교 폭력에 연루, 자치위를 통해 3호 교내봉사 처분을 받았다'는 식으로 담임교사는 꼼꼼하게 기록해야 하고, 규정상 누락되면 해당 교사는 자칫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자치위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데, 피해자 부모로부터 연락이 왔다. 괘씸하지만 용서하기로 했다고. 용운이 부모님이 며칠 동안 전화를 걸어 거듭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던 모양이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직후 아이에게는 "사내답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하지만, 용운이의 부모는 자기 자식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는 것을 우려한 탓일 게다.
며칠 뒤 용운이의 아버지는 병원 정밀검진 비용부터 스마트폰 구입비에 위자료까지 섭섭지 않게 챙겨줬다면서 전화기에 대고 "세상 참 무섭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그런데, 정작 안타까운 건 용운이, 그 후배를 향한 수그러들지 않는 용운이의 분노다.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에 잘못했다고 생각은 할 테지만, 후배로부터 그 같은 빈정거림을 또 듣게 된다면 그때도 흠씬 때려줄 거라며 씩씩거렸다.
교과부의 '학교폭력 사안 기재 의무화', 가혹합니다
학생부장으로서 가해자 처지인 용운이는 물론 그 부모에게 대놓고 말할 순 없었지만, '그 상황에선 나라도 참지 못했을 것'이라며 공감해주고 싶었다. 얼마 전 버스 정류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세 명이 교복을 입은 채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길래 공공장소에서는 누구든 금연이라며 나무랐더니, 대뜸 "아저씨가 뭔데 간섭이냐"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당장 담뱃불을 끄라고 언성을 높였더니 힐끗 노려보더니 욕설과 함께 침을 바닥에 뱉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때는 정말이지 그 아이들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스스로 참는 게 용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물론, 만약 참지 못하고 일을 벌였다면 아마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신세가 됐을지도 모른다.
며칠 후 용운이를 따로 만나 이런 경험담을 들려주며 다독여주고, 수그러들지 않는 그의 분노를 삭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어떻든 자치위는 열리지 않았고, 이내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용운이네 집에는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쳤겠지만, 되레 그 일로 인해 그와 부모님은 훨씬 더 가까워졌다고 한다.
만약 자치위가 열렸다면 어땠을까. 이유야 어찌 됐든 용운이는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자'로 기록됐을 것이다. 몇 자 적을 수 없는 빈 칸에 자초지종을 미주알고주알 다 기록할 수 없을 뿐더러, 설령 가능하다 해도 자치위가 빈번하게 열릴 경우 학교생활기록부는 관련 기록으로 누더기가 될 게 뻔하다.
무엇보다 그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된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간 담임을 맡아 부모만큼이나 속속들이 잘 아는 교사도 학년 말 행동특성 등 종합소견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적을 때 부정적인 표현을 자제하는 등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한다. 하물며 학교폭력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삼가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의 '기재 의무화 지침'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조치다.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현직 교사들조차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낙인을 통한 배제가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언정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일 수 없다는 것이다. 매만 안 들었을 뿐 체벌과 하등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거다.
낙인과 배제, 학교폭력의 흉포화 불러올 수도
ⓒ 교과부 누리집 갈무리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공간이다. 행위 자체를 놓고 보면 '낙인'과 '배제'는 교육의 정반대 말이다. 곧, 교과부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방안이 되레 철저히 반교육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렇잖아도 서로 교감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사제지간을 더욱 삭막하게 만드는 조치일 뿐이다.
낙인과 배제는 이른바 '막 나가는' 아이들에게나 어울릴 만한 조치이지만, 정작 그들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되레 그들 사이에서는 그런 기록들을 '훈장'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학창시절 내내 학교 폭력은커녕 소소한 말썽 한 번 부리지 않을 아이들만 겁박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최근 교과부가 각 시도교육청에 자치위 처분 내용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실태를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학교 입장에서는 교과부와 교육청이 서로 기 싸움을 하고 있는 모양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국가인권위원회도 우려했듯 잘못된 정책을 만들어놓고는 일단 지침을 따르라고 겁박하는 교과부의 반 교육적이고 반 인권적인 행태가 갈등의 뿌리다.
교과부는 지침을 거부하거나 보류한 전북과 강원·경기·광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찬성한다고 여긴 것일까.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의 형평성 운운하는 교과부의 적극적인 해명이 황당하게 들릴 뿐이다.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열린 자세와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고 보완·수정할 수 있는 교과부의 용기가 아쉽다.
감히 단언컨대, 낙인과 배제라는 '주홍글씨'로 학교폭력을 근절시킬 수 없다. 교과부 지침과 같은 획일적인 조치가 사춘기 아이들의 재활을 차단하고 되레 학교폭력을 흉포화시킬 개연성마저 없지 않다. 아이들이 학교 폭력과 일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삭막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교육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욱 한 나머지 용운이가 '사고'를 친 시각은 새벽 2시. 누가 봐도 버릇없는 행동으로 매를 번 후배나, 화를 참지 못한 용운이나 둘 모두 그 늦은 시간까지 쓴 커피를 마셔가며 일제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쩌면 용운이와 그 후배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피 끓는 청춘'들을 그 시간까지 책상에 앉혀둔 서슬이 퍼런 무한경쟁 사회를 탓해야 하지 않을까.
[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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